VOX KOREANA (2007-3-30)에 전재된 원고입니다.
나의 아버지(李元壽:아동문학가)께서는 생존하셨을때 우리 가정이 워낙 가난하게 살아온 까닭에 아버지께서는 농담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물려줄것은 내가 쓴 글과 이 만년필 밖에는 없다’ 하신일이 자주 있었다. 아버지께서 15살에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을 발표 하신 이후로 70세에 돌아가시기 직전 동시 ‘겨울 물오리’를 쓰시기 까지 많은 글을 끊임없이 쓰셨다.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 소중한 글을 엄청나게 많이 물려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장남인 내가 좀더 일찍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 아버지를 옆에서 모셨어야 했을터인데 설흔이 넘어서 늦게 유학나와서 아버님의 노년기에 건강과 살림을 도와드리지 못한것이 안타까울뿐이다. 돌아가신 병환의 원인인 암을 조기발견 해서 치료할수 있었더라면 더 사실수 있었을게고 더 많은 글을 남기실수 있었을터인데… 하는 불효자식의 후회하는 마음이 늘 맺혀 있다. 아버지께서는 70평생의 삶속에서 어린이를 위한 수많은 글을 쓰셨는데 작품속에서 우리 나라 사회가 겪은 어려움,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동화, 동시, 또는 소년소설에서 소재로 다루시면서 옳바르게 살아 나가야 될 길과 참된 사랑을 보여주는 글을 쓰셨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의 어려움에서 해방되고 그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터진 6.25 한국전쟁은 우리민족이 겪은 가장 큰 고통스러웠던 사건이였고 휴전이 된후에도 전쟁의 결과로 몰고온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속에서 서민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은 더욱 심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기는 아버님으로 하여금 더욱 깊이있는 글을 쓰시게 만든것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 아버지께서 격었던 가장 고통스러울때 쓰신 글들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 아닐수 없다.
내가 애끼는 책의 하나인 ‘호수속의 오두막집’ 이란 책은 이런 시기에 쓰신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1975년 출판되었는데 이때 나는 이곳 뉴멕시코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내 아들 재원이가 10살, 딸 혜정이가 8살때 였는데 아이들에게 읽혀주라고 아버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신것이다.
`호수속의 오두막집` 책을 미국에 와있는 손자 손녀에게 보내주셨다. 책의 표지와 첫페지에 손자손녀의 이름을 쓰신 친필.
이 책은 40개의 동화와 시, 소설등을 실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수속의 오두막집’이다. ‘호수속의 오두막집’은 우리 가족과 아버님이 직접 당했던 고통을 바탕으로 쓰신 글이기에 감회가 더욱 깊다. 6.25전쟁때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했다가 UN군의 인천상륙으로 북으로 후퇴할때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 상황으로 가족을 버려둔체 월북할수 밖에 없었다. 서울에 남은 우리 가족은 하루 하루 먹고 사는것이 어려워젔다. 13살의 나와 11살의 동생 둘은 함께 매일 신문장사를 해서 집안 식구를 도왔고 어머님은 패허가 된 서울에서 막일이라도 하시겠다고 동분 서주했으나 끼니를 이어가기에는 턱부족이였다. 아이들을 굶겨 죽일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어머니께서는 세 동생 아이들을 고아원에 위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했던 위기를 맞았다. 전쟁이 끝날줄 알았는데 몇달후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또 다시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가게 되는 혼란속에서 세 동생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고아원에 어린아이들은 너무나 갑작스런 후퇴작전에 휘말려 일부는 비행기로 후송되고 일부는 후퇴하든 도중 인민군 치하에들어가든가 전쟁의 불길속에 희생된것은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다. 서울은 인민군의 지배하에 다시들어갔다. 북으로 가셨던 아버지께서는 쫓기는 몸으로 북으로 몰리다가 인민군이 중공군과 함께 서울을 점령하게 되자 남으로 내려와 안암동 우리가 살던 집으로 찾아 오게 되었다. 우리는 그때 인천에 피난나가 있었고 서울 안암동 우리 집은 물론 온 동네가 텅 빈 Ghost Town이였다. 모두가 피난가고 빈집 뿐이였었다. 아버지께서 살아 오시기만 바라는 기도를 늘 해오신 어머니께서는 어느날 밤 아버지께서 나타나시는 꿈을 꾸셨다. 그다음날 밤 어머니께서는 인천서 서울까지 눈 덮힌 밤길을 걸어 새벽엔 한강에 도달하고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너 아침해가 떴을때 어머니는 서울집에 도착해서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아버지께서 오신 흔적이 없음을 보고 실망해서 집을 나서려는 순간 아버지께서는 이 집으로 들어 오시는 순간이 되어 가족의 기적적 재회가 이루어졌다.
아버지께서 월북했다가 다시 내려와서 가족을 만나 살수 있게된것은 얼마나 다행이였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인해 남으로 북으로 흩어져서 생사를 모르고 사는 불행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이런 불행한 경우의 슬픔을 ‘호숫가의 오두막집’ 에서 동화로 얘기하고 있다.
동화의 내용은 인민군으로 월북한 아들을 평생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의 애절한 마음을 그린것이다.
아들이 살던 집이 발전소 저수지 공사로 물에 잠기게 되어 이사를 가야 되는데 월북한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는 집을 떠날수 없다고 울부짖는다. 집이 물속에 잠기고 이사를 가버리면 월북한 아들이 찾아 올수 있는 유일한 만남의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할머니는 떠날수가 없는것이였다.
사랑은 이념도 사상도 초월한다는것을 보여주는 동화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또 하나의 책으로 ‘꼬마옥이’가 있다. 이 동화는 잃어버린 3살 짜리 동생 상옥이를 생각하며 쓰신 글이기에 읽을때 마다 나는 죄 없이 죽었거나 아니면 살았더라도 버림받고 고통속에 고아로 살아가야 했을 동생이 불쌍해서 울어버리고 만다.
동화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내가 피난길에서 옥이란 이름의 소녀를 만난다. 그러나 얼마후 옥이는 병으로 죽고 죽은 옥이 주머니에서 발견된 작은 소녀의 인형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나'로 나오는 극중 등장인물은 글을 쓰신 아버지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쓴 시적인 면이 강하여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나는 눈 속 시골집에서 눈 쌓이는 산천을 멍하니 내다 보고만 있었다.
눈을 보고 있으면 내 딸 상희가 자꾸만 생각나는것이었다. 유달리도 귀엽던 세 살짜리 상희! 크고 동그란 눈, 귀염성 있게 생긴 입술- 내가 저녁때 집에 들어오면 먼데서 보고 달음박질로 뚸어와서 내 품에 안기려고 제 몸뚱어리를 내던지듯 내 몸에 부딪히며 좋아하던 상희! 그 상희를 생각하는것이었다……. 동화속에 나오는 상희란 곳 나의 동생 상옥을 생각하고 쓰신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잃은 동생중 제주도로 후송된 동생을 찾았으나 한살짜리 동생은 안양고아원에서 죽은것으로 추정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살먹은 동생은 생사를 알수 없었으나 살아 있을수도 있다는 한가지 가능성을 발견했었다. 그것은 그가 있었던 고아원의 일부 어린아이들이 대구로 피난을 갔었고 그뒤 미국으로 입양되어 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입양아들의 이름이나 기타 기록이 없어서 확인은 불가능 했다. 그 이후 나는 미국서 38년간 살아오는 동안 동생을 찾을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길 고대하며 늘 지내왔다. 내가 섬기는 우리 교회에 미국인을 남편으로 둔 내 동생 나이벌의 여자교인이 새로 나오면 혹시나 이 여인이 내 동생 상옥이는 아닐까 하는 희망부터 가저본다. 그러다가 그의 부모가 한국에 버젓이 계신분 임을 알고서야 희망을 버리곤 한다.
1977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판한 이원수 동화집 ‘꼬마 옥이” 는 나의 애장품 일호이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후 일생의 작품을 모두 모아서 33권의 전집이 동생 (李貞玉)의 노력으로 옹진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고 동생은 이책을 보내주어 오늘날 우리 가족의 애장품이 되어 있다. 일만 페지가 넘는 전집속에는 아버지의 삶과 아버지께서 가젔던 간절한 생각, 깊은 느낌, 사랑의 기쁨과 슬픔, 전쟁에 대한 미움과 아픔과 분함…….모든것이 담겨있다.
나는이 기사를 철저히 즐겼다. 콘텐츠가 풍부하고 많은 품질의 기사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추가 기사를 읽기를 기다리고있다. 건배 비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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