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5, 2013

알버커키와 시인 황갑주(II)

지난 에는 시인 황갑주선생의 알버커키에서의 이민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를 세편 소개했는데 이번호에서는 알버커키와 뉴멕시코 지명이 나오는 시를 몇편  소개하려고 한다.  시인 황갑주선생이 1971년경 알버커키에 계신 동안의 그의 생활 모습을 그의 시집 하늘이 따라와  마지막 부분에 있는 후기(後記) 요약해 놓았다. 이를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멕시코주 알버쿼키시 사막속 마을 속에도 우리 유학생이 있었다. “주말엔 형들 외에도 여러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바쁜 중에도 우리는 모여 회포를 풀고, 윳놀이, 고향노래, 맥주 반잔에도 뒤를 흔들고, 모국어로 실컨 떠들고 나면 , 맺혀 있는 속이 풀렸다. 막막한 인생여로 (人生旅路), 이색적인 경치풍토에 읶혀야 했다. 칼스벹 케이번, 화이트 쎈드, 애리조나의 그랜드 캐년, 택사스, 등지 주말 코스로 사막의 지평선을 운전하고 다녔다. 콜로라도 듀랑고 산상 스키장에서의 며칠은 만사를 잊을 있었다. 세계의 피난처 같은 알버쿼키에서의 1년은 차분히 준비와 단련을 쌓았다.

 

황갑주선생은 UNM(University of New Mexico)에서 한두 불럭 떨어진곳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고 우리는 UNM켐퍼스안에 있는 학생 가족 아파트에 살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기 때문인지 쇼핑가는 곳도 비슷했다. 당시 우리 유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은  인디안수쿨과 칼아일 코너에 있는 케이마트(K mart)였다. 케이마트는 황갑주선생 가족에게도 친근한 이였나 보다. 아래의 시가 사실을 확인 시켜준다. 케이마트를 오가면서 고향땅에 있는 무량산, 섬진강을 생각하고 새로운 고향을 개척하는 개척정신도 담긴 시다.
 
                     고                     
 
발자국을
많이 남긴 곳이 고향
내가 태어
고향뜰과 어린
학교길.
 
등성, 우리 고랑
우리 어머니 발자국
논길, 아버지 발자국
항상 자리에 놓인 무룡산
섬진강이 적시는 적은 평야는
발자국을 뿌린
어린 시절의 우주.
타국 살이 하며
회상하는 발자국
주말 오르내리던 도봉산
천마산에 남긴 발자국
명동길은
희망 태우던
서울 시민의 골목
 
아메리카
로스앤젤리스 변두리
그렌데일시를 떠나
멕시코 온통 황색 대지속
알버쿼키시의 온통 청색 하늘밑에서
밟던 발자국
케이 마트 .
 
타국에서 헤매자니
발자국이 엉킨 고장들
지나면 설지않는
이국의 고향도 생기고
고국의 고향은 너무 멀구나.
 
나의 경험으로도 우리 가족이 알버커키에 사는 동안 주말유행을 가장 많이 했던것이 1970년초 였는데 그때 여행 할때마다 황갑주선생 가족과 함께 여행을 많이했다. 그분이나 우리 유학생들 모두가 고물 자동차를 타고 다녔기에 어디서 차가 고장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여행을 갈땐 되도록 서너대의 차로 함께 가는 것을 원했던것 같다. 그가 뉴멕시코의 광야를 고속도로로 달리면서 쓰신 시를  여기에 하나 소개한다. 한국에서 고속도로가 생기기도 전에 이곳에 왔던 한국 유학생들에게는 특히 공감되는 시였다.
 
                   일기초(日記抄) I
 
택사스와 뉴멕시코
애리조나 거처 캘리포니어를 이은
황지(荒地) 고속도로를 달릴때
 
90마일을 놓고도
나의 운전은 정지 같았다.
일직선으로 뚫린
백리가 앞에 있는
고개를 넘으면
다시 백리가 아래 온다
 
언덕에서 보면
나의 차는 나르는 속도련만
달려도 달려도 달리지 않는
우주공간에
하나 걸어가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달리는 동안
버려진 황지만 탐이 났었다
사람은 많고, 일터는 없고
사람은 불어 나는데 땅이 좁은
 
서울의 끓는 인구
벌판에 냈으면
신은 야속하기만 했다
땅은 넓고 넓은데
사람이 없는
허허 벌판.
 
황갑주 선생은 1년간의 이곳에서 이민 생활을 한뒤 LA 이사를 했지만 사막을 사랑하게된 그분은 애리조나Phenix 콘도를 구입해서 서재로 쓰면서 애리조나와 LA 왕래하면서 집필을 계속하셨다. 그의 미국에서의 두번쩨 시집 사막기에는 시기에 사막을 노래한 시가 여러편 실려있다. 서간집 애리조나 사막에서 고국의 벗들에게라고한 책도 기간중에 쓰신 서신을 모은것인데 그분의 일기장과도 같은 서간집이다.  표지의 사진은 애리조나가 아닌 멕시코의 풍경이다.  코스모스의 배경은 헤이메즈산의 하나인 Cerro Pedernal산이다. 고스트 랜치에서 살던 화가 죠지아 오키프가 사랑하던 산이다.
시인 황갑주 선생도 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멕시코의 경치를 표지에 썻나보다.  그의 사막 사랑의 절정의 사막기 소개 한다.
 
                                          사막기 (沙漠記)
 
캘리포니아주를 사랑한다.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뉴멕시코, 택사스주도
사막이 열린 어느주의 하늘 땅도 사랑하리라.
 
태어나서 그리움은 이루나니
어린시절 하늘끝 그리움은 사막에
흘러와 더는 그리움이 없도다.
 
이승경험은 사막뿐이다.
나의 존재를 더는 확인하지 않는다.
광망도 그대 없이 있지않는 하늘 땅을
나를 잃어서 비로서 사랑하리라.
 
캘리포니아주를 살다가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뉴멕시코, 택사스주도
사막이 이은 어느주를 거치다가
나의 그리움은 그대 없이도 광명하리라.
 
뉴멕시코주의 남쪽에 있는 라스쿠르시스에서 애리조나 투산으로 가는 10 고속도로를 달리면 데밍(Deming)이란 마을을 지난다. 곳에서 하루밤을 투숙하고 허허벌판의 무인지대에 하늘과 광야만이 펼쳐진 이곳을 나도 달려본적이 있다. 그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황선생의 시를 생각했었다. 그분의 시가 바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쓰여 졌기 때문이다. 그분의 시집 사막엔 달이 뜨더라 서문에 보면 그분의 시가 어떻게 쓰여 졌는지 설명 되어 있다. 원문을 옮겨 본다.
  사막을 달리는동안 나의 싸구려 자동차는 이내 고물차로 낡아버렸다. 광활한 하늘땅의 지평선만 털털거리며 신나게 활주하는 동안, 내가 신들려 중얼대는 시구(詩句) 옆자리에서 아내인 영희가 넓은 달력 뒷면을 펼쳐 놓고 나만이 해독할수 있는 거미꼴의 속필로 나도 겨우 풀이해 흥얼곡들이 사막엔 달이 뜨더라등의 연작시이다. 사막만 달리면 주체할수 없도록 황홀한 영감이 쏟아져서 나를 실신케 하므로 저승과 이승을 함께 살며 영원을 본다.

연작시 사막엔 달이 뜨더라 7번시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면서 끝을 맺기로 한다.  지난 40년간 만나지는 못하면서도 시집이 나올때마다 시집을 보내 주시고 때마다 서신으로 소식을 주신 황갑주선생의 깊은 우정에 감사한다.
 
               사막엔 달이 뜨더라     (7 )
 
달리다가 숨이 멎어
죽고 싶은
사막의 노란 꽃밭
너무 아름다워 죽고 싶은
하늘 변두리엔
절세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꽃밭에 누워
하늘 껴안고
깜박이며
잠자는 황홀한 사막
데밍 사막을 지나면서
죽고 싶은
시인 황갑주 선생은 1930 전라북도 순창에서 출생했고 동국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음.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음.  저서로는 내년에라도”(1965), “하늘이 따라와”(1973),”사막기”(1979), “나성에서 광주의 하늘”(1988),”사막엔 달이 뜨더라”(1992), 서간집 애리조나 사막에서 고국의 벗들에게”(2006),  시집시인이 통일 노래”(2007), 시집 산타페는 접시꽃”(2008)등이 있음. 황갑주 선생은 재미시인상을 수상했고 1982 LA PBS(KCET) TV방송국 초청으로 출연하여 자작 낭송을 한국어로 하였음(영어자막을 포함).  1992  미주 문학상을 받았음. 미주 문학상은 받은 시인중에는 마종기(89), 김용팔(90), 고원(93), 박남수(94)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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